[책] 이갈리아의 딸들 -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련된 책들을 몇권 읽었는데, 이 책도 예전에 구매했지만 그 당시 다 읽지 못해서 지금까지 미독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독서모임에서 이번 시즌에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이 책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집에 미독으로 남겨둔 책들이 꽤 많은데 그 중 하나를 고르면 좋겠다 싶었고,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만한 책이 좋을 것 같아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면 좋을 만한 분야의 책인 이갈이아의 딸들이 딱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 책을 끝까지 못(안) 읽은 이유는 2가지 였던 것 같다. 우선 첫번째는 용어가 너무 낯설어서 힘들었다. 이 책의 세계관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움, 맨움 등)이 익숙치 않아서 계속 앞에 있는 용어 해설을 찾게되었고 그로 인해 이 책을 읽는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 재미가 반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계속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 난 어떤 기분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또 집중을 하지 못했고 끝까지 읽지 못했다.(내 집중력 열일하자...)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남성우월주의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용어부터 여성-Wom, 남성-Manwom으로 현실에서의 Woman과 Man, She와 He, Female과 Male 처럼 남성중심사회의 언어를 비판했다. 이 외에도 많은 용어들이 풍자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것은 어떤 언어를 바꾼거야 라고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읽었지만 영어로 되어 있는 원작을 읽는다면 아마 더 많이 느꼈지 않을까 생각된다.(물론 영어 실력이 안되지만...)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용어 설명에서부터 느꼈지만 작가의 언어학적 지식과 여성학적 지식이 만나 이러한 기발한 풍자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페트로니우스를 중심으로 움우월주의를 보여주며 현실과 대조되는 이갈리아라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각성한 페트로니우스가 맨움해방주의자가 되어 맨움해방운동을 펼치며 마지막엔 민주주의의 아들이라는 책을 내며 풍자의 끝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정말이지 이 작가의 센스가 존경스러울 정도다. 민주주의의 아들이라니!
이 책의 주인공인 페트로니우스는 어부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갈리아에서 어부라는 직업은 여성적이고 힘이 강한 움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남성적이고 힘이 약한 페트로니우스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현실에서도 특정 성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직업군이 있는데 내가 지금 속해있는 직업군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도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직업군이다. 나는 이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 직업군에 대해 편견이 생기기 딱 좋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직업이 남성만의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진다면 여성이 그 직업을 가지려 할 때, 그 직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려할 때 이런 질문을 들을 수 있다.
그건 남자만 하는건데 여자인 너가 왜 그걸 해?
이보다 심한 말을 들을 수 있고,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만약 그 직업군에 속하게 되더라도 무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난 특정 직업군이 특정 성별에 의해 정복당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책에서는 현실을 패러디한 부분이 매우 많은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페트로니우스가 강간을 당했는데, 그의 어머니인 브램은 이것이 알려져봤자 좋은 일이 없다고 오히러 부끄러운 일이니 페트로니우스에게 부성보호를 받지 못할것이라는 말을 하며 비밀로 지키자고 한다. 이것은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당한 여성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세상에 말 못하고 있는 현실을 패러디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1970년 대에 쓰여졌는데 어쩜 세상은 이리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바뀌지 않은것인지...
그리고 책 안에는 맨움적이지 못하게 키도 크고 덩치도 크며 근육질인 노총각 올모스 라는 인물이 나온다. 올모스는 학교에서 287번 지침에 따라 학생들에게 움우월주의를 교육한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맨움해방을 꿈꿀 정도로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적 약자인 맨움이기에 참을 수 밖에 없다. 교육자로서 이러한 지침을 받아 움우월주의를 계속 전수(?)하는 것을 읽으며 나도 그동안 교육과정 중에 직접적이나 간접적으로 남성 우월주의를 전수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난 몇년전 까지만 해도 이러한 세상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이 참 중요한데 지금도 이런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면 부디 하루빨리 바뀌길 바란다.
맨움은 불필요하다! 우리에게 왜 맨움이 필요한가? 그들을 살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우리의 위대한 박애 때문일 뿐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맨움 없이도 잘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바보천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가지 견본만 보존하면 된다. 우리는 너희들의 정자를 냉동시키고 너희들을 전부 죽일 수도 있다.만일 우리가 남자아이를 낳는다면 정자은행을 보충하기 위해 몇 명만 살리고 나머지는 모두 죽일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다. 왜냐하면 속으로 맨움이 여성이고, 움이 남성인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그럴것이라 믿고싶다.) 그래도 특정 집단우월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이 너무나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사람에 따라 조금 혐오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지금의 현실의 패러디라는 점이라는 것이 너무나 슬픈 것 같다. 하지만 난 이것이 작가의 메세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갈리아라는 세계는 우리에게 너무나 폭력적이고 혐오스럽다. 하지만 조금 과정적일 수 있지만 이갈리아는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에서 성별만 바뀐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럼 현실도 너무나 폭력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이 아닐까. 이갈리아라는 세계처럼 우리의 현실이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잘못되었으니 바뀌어야 한다. 남성우월주의도 움우월주의도 옳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할 세상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어진 세상이다. 그리고 여기서 좀더 나아가자면 어떠한 기준으로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종, 국가, 성적지향 등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이러한 차별에서 자유로운 세상이 과연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조금 나아질수 있게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초반부에도 말했지만 난 그동안 남성인 내가 이런 책을 어떤 기분으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제야 조금 내린다면, 그동안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후회되고 반성해야한다. 그리고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조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소심한 소시민적 기득권자이기 때문에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에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기로 하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생각과 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공유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