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아인슈타인 그리고 다정함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갖게 됐다. 다정함의 원천은 무엇인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갖게 됐다.
다정함의 원천은 무엇인가
에반게리온
사람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르는걸
100% 서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거야
뭐, 그래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을 알려고 노력하지
인생이란 그래서 재밌는 거고
- 에반게리온 TVA 18화 중
인간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근본적인 한계로 우리는 고독을 느끼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완벽히 이해해 줄 타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역설적이게도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어떤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타인이 존재하길 갈망한다. (그리고 에반게리온 세계관에서는 이것 때문에 무시무시한 일이 계획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타인이 되어보지 않으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진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감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시도를 지속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의 모습이다. 다정함은 단순히 친절하거나 배려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유독 그런 노력을 누구에게나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 중 "저분은 정말 다정하네."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나보다 더 다정함에 더 가까울 수 있는 걸까? 그들의 다정함은 선천적인 성향일 수도 있고(요즘 유행하는 MBTI의 F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노력의 허들이 낮아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다정한 사람들은 타인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는 아마도 위 대사처럼 그들에게는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
The important thing is not to stop questioning. Curiosity has its own reason for existing. One cannot help but be in awe when one contemplates the mysteries of eternity...
Never lose a holy curiosity.
아인슈타인은 "신성한 호기심(Holy Curiosity)"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가 우리 존재의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내 생각에 아인슈타인이 말한 "신성한 호기심"은 단지 과학적 발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타인도 이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타인은 각자의 경험, 생각, 감정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만든다. 우리가 밤하늘을 보면서 우리를 둘러싼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것처럼 타인에게 호기심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다정함의 원천이 타인을 향한 신성한 호기심이라면, 우리는 누구나 다정함을 연습할 수 있다. 다정함은 특별한 자질이나 재능이 아닌, 일종의 태도와 습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체득하는 지식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이 호기심을 잃어버리곤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인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때로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타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SNS와 같은 현대적 소통 방식은 타인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과 이해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단편적인 이미지나 짧은 글로만 접하게 되고, 그것은 때때로 왜곡되거나 과장된 모습일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욱 어려워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함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타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려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다.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내 우주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내 이해의 영역이 내 우주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타인을 이해하며 점점 내 우주는 거대하고 무거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정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 우주를 더 무겁고 더 거대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다정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에게 끌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거대한 우주를 가진 타인에게 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다정한 사람들은 우주 탐사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매일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천체물리학자처럼, 매일 타인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면서. 그러고 보니 다정한 사람들은 꽤 바쁜 사람들이었네. 이 넓은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우주들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