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요즘 세상은

예전에 TV 프로그램들의 화질이 급격히 좋아진 적이 있다. 나는 매주 즐겨보던 무한도전에서 이를 처음 느꼈는데, 화면은 선명해졌지만 묘하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보다 보니, 그 어색함의 원인은 다름 아닌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출연진들의 피부 잡티와 피부결 같은 부분들이었다. 화질이 좋지 않을 때는 신경 쓰이지 않던 부분이 너무 잘 보여서 낯설게 느껴졌던 것이다. 당시에는 "화질이 좋아지니까 이런 것까지 보이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 경험이 종종 떠오르는 이유는, 어쩐지 요즘 세상은 이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한도전의 첫 HD 방영작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고해상도 사회에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해상도는 비단 시각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포함한다. 정보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자세하며, 어디서든 쉽게 나에게 도달한다. SNS, 유튜브 등 각종 미디어는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일들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보여준다. 이제는 먼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도 즉시 전달되고, 개인적인 사건이나 일상까지도 세세하게 드러난다.

사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적어도 나는 스스로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무관심한 태도가 좋고 나쁨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요즘 디지털 문명이 타인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강요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어쩌면 강요라기보다는, 내 관심사가 아닌 것들까지 눈앞에 들이밀어 보게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파편들에는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섞여 있다. 무자비하게 입력되는 무작위 정보 홍수 속에서 무방비한 나는 그저 무참히 얻어터지고, 그러면 난 내가 뭘 원했는지, 뭘 해야 하는지 잊어버리고 만다.

이 상태가 더 심해지면, 나는 정보를 주도적으로 선택해 소비하기보다 그저 나에게 도달하는,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흡수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디지털 치매에 걸린 기분이 든다. 인간이 튜닝한 알고리즘에 의해 튜닝된 인간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영화 루시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 중 내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뇌의 100%를 사용하게 된 초능력자가 무수히 많은 디지털 신호 중 원하는 정보를 찾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초능력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초능력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사용하는 기술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위기로 인식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기술의 발전은 더 높은 차원과 더 넓은 가능성을 갈망하는 인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진보일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은 꿈을 가진 인류에게 앞으로도 필연적일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에 집중할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볼 수도 없고, 볼 필요도 없다. 마치 웃긴 예능의 출연진의 피부 잡티에 시선이 끌려 재미라는 본질을 놓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요즘 세상은 너무 선명한 듯하다